칼럼

고통의 값

전미선 2009. 8. 10. 18:00

      운동을 하다가 소위 말하는 엘보가 왔습니다.  그러나 그것이 엘보인지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.

'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'  했습니다. 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

악화되었습니다.  그러다가 급기야는 한의원이라는 곳에 다니게 되었습니다.

난생 처음입니다.  침을 맞으며 좋아지는듯 했습니다.  그러나 속도가 문제인지 빨리 좋아지는 것

같지는 않았습니다.  그러던 중 주변의 친구가 한 사람을 강력하게 소개해 주었습니다.

활법사라고 할 수 있는지 서양식으로 말하면 카이로 프락틱 정도인 것 같습니다.

찾아갔습니다.  그러자 그 분이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.

"치료되지 않을 것 같으면 자신에게 오라고 말도 하지 않는다"고 몸을 맡겼습니다.

그랬더니 굳어있는 근육을 사정없이(?) 짓누르며 치료를 합니다.  얼마나 아픈지

신음소리가 절로 납니다.  세번 정도 하면 어느정도 나아질 것이라는 말에 꾹 참고 견뎠습니다.

아니나 다를까 현재 세번을 다녀왔는데 현저하게 좋아졌습니다.

뭉쳐있는 근육을 팔꿈치 뼈로 누르고 발로 누르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.

그 분 말에 의하면 죽지 않을 만큼! 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했습니다.

그런 고통의 시간이 지나야 낫는다는 것입니다.  그런 고통이 와도 나아야겠다는 절박함

때문에 세번을 간 것입니다.  그랬더니 좋아졌습니다.

육체의 고통과 비용의 지불이라는 댓가는 육체의 치료와 평안을 가져왔습니다.

세상도,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.   고난은 힘든 것이고 가기를 싫어하는 길이지만

그것을 겪는다면 반드시 그 댓가는 돌아옵니다.

고난 뒤의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이 값진 것을 얻습니다. 

놀고 싶고, 쉬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책상에서 오랜 인내의 시간을 가질 때

좋은 성적이 나옵니다.  시련이 와도 믿음으로 견디고 나갈 때 쓰임 받는 사람,

남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우뚝 서는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.

나는 어떤 값을 지불하며 사는 인생입니까?